2016년 기준 전국에는 355만929개의 중소기업이 있다. 이 중소기업에는 1746만8405명이 근무한다. 이는 한국 전체 경제활동 인구(2745만5000명, 통계청 기준) 중 64%에 달하는 규모다. 세계 시장을 정복해가는 국내 중소기업도 적지 않지만, 기술력을 갖추고도 마케팅 부족 등으로 조명을 받지 못해 ‘파이’를 키우지 못한 중소기업이 부지기수다.
중소기업중앙회가 2017년 109개 중소기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전체의 83.3%는 “자사 브랜드가 잘 알려지지 않아 영업활동에 제약이나 한계를 경험했다”고 밝혔다. 실제로 중소기업 현장에서는 “신기술, 신제품을 개발해도 마케팅이 잘 되지 않아 재투자와 성장이 어렵다”고 아우성이다. 이러한 중소기업의 성장을 돕기 위해 기술력과 상품성을 갖춘 중소기업을 선정, 그들의 기술 축적 사례와 상품 개발의 비하인드 스토리를 조명한다.
엘엔티테크 노종국 대표
발 각질 제거기 ‘베베풋 글라스’ 대박
“미국, 스웨덴, 나이지리아에도 수출 시작”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르지만, 발 각질이 심한 사람은 말못할 고통에 시달린다. 발이 심하게 갈라져 피가 나기도 하고, 걸을 때 아파 발에 반창고를 붙이기도 한다. 이런 사람을 겨냥해 시중엔 전동, 액체, 메탈, 팩 등 다양한 형태의 발 각질 제거기가 나와 있다.
중소기업 엘엔티테크도 요즘 발 각질 제거기로 주목을 받는 회사 중 한 곳이다. 이 회사는 작년 5월 발 각질 제거기 ‘베베풋 글라스(http://bit.ly/2vfrJpI)’를 개발해 지금껏 약 5만개를 팔았다. 이 제품은 반도체 커팅 기술을 적용한 특수 가공 유리로 만든 것이 특징이다. 각종 인터넷 쇼핑몰에서 “신세계” “다른 제품과는 차별화된 경쟁력” 등의 호평을 받는 중이다. 2018년 키워드 검색 순위 1위를 차지하고 있고, 작년 12월엔 한 중앙 일간지가 선정한 ‘올해의 우수브랜드 대상’ 1위(이미용기기 부문)에 올랐다.
이러한 발 각질 제거기를 만든 엘엔티테크는 사실 생활가전 제조업체다. 직접 만난 노종국(38) 엘엔티테크 대표는 생활 소형가전 업체가 발 각질 제거기를 만든 계기를 이렇게 설명했다. “제가 발 각질이 심하거든요. 시중에 나온 온갖 제품을 써봤지만 시원치 않아 직접 만들었죠. 사실 회사 모토가 내가 쓰고 싶은 물건을 만들자는 것입니다.”
10년간의 경험으로 창업 결심
노 대표는 2016년 11월 엘엔티테크를 설립했다. 10년간 디스플레이 제조 중소기업을 다니다 독립한 것. 자본금 100만원으로 시작했고, 별도로 그동안 모아놓은 돈과 퇴직금을 합쳐 약 1억원을 쏟아넣었다. 상품을 기획·설계하고, 유통망을 확정한 후, 중국 OEM 공장에 생산을 맡겼다. 가장 먼저 출시한 상품은 무선 블루투스 이어폰이었다. 이후 보조배터리, 차량용 공기청정기, 스마트구강세정기 등으로 상품 폭을 넓혀나갔다.
-공대 출신인가.
“아니다. 스포츠에이전시를 꿈꿔 남서울대 스포츠경영학과에 00학번으로 입학했다. 하지만 여의치 않았다. 스포츠 마케팅 분야는 연고대 경영학과 출신들이 꽉 잡고 있더라. 진입장벽이 높았다. 스포츠에이전시 꿈을 접고 다른 길을 찾다 온라인 마케팅 분야에 관심이 생겼다. 엠파스라는 인터넷 검색회사와 SK커뮤니케이션 광고를 하는 대행사에서 온라인 광고 마케팅 업무를 잠깐 배웠다. 졸업 후 영업·마케팅 담당으로 디스플레이 전문 제조업체 오리온정보통신에 입사했다.”
-뭐하는 회사인가.
“탑싱크라는 모니터와 TV를 만드는 회사였다. 매출 1000억원 정도 되는 중소기업이다. 국내에 제조공장도 갖고 있었다. 그곳에서 영업팀장으로 일하며 마케팅과 영업을 총괄했고, 어깨너머로 상품을 기획하는 법도 배웠다. 이후 그 회사 전무님이 독립해 새로 차린 ‘티베라’라는 업체에 2014년 합류했다.”
-티베라도 모니터 제조 회사인가.
“LED TV 전문 제조업체다. 매출 200억원 정도 됐다. 그곳에서 총괄부장으로 일하며 영업과 기획, 생산관리 등을 총괄했다. 제품을 어떻게 기획하고, 소싱하고 유통하는지 그때 많이 배웠다. 재래시장부터 대기업까지 안해본 영업이 없다. 애초 안정적인 것을 좋아하는 성격이라 창업할 생각은 없었지만, 2016년 아버지가 돌아가시면서 가족들을 위해 사업을 일으켜야 했다. 그래서 엘엔티테크를 세웠다. ”
-10년간 해온 디스플레이업이 아닌 생활가전 제조 중소기업을 차린 이유는?
“디스플레이 업종을 할 것인가 다른 업종을 할 것인가 처음부터 고민이 많았다. 결론은 업종에 제한을 두지 말고 생활에 유용한 상품을 개발하고 유통하자는 것으로 냈다. 요즘 중소기업이 한 업종만 해서 살아남기는 정말 힘들기 때문이다. 다양한 상품을 기획하고 개발하는 데 주력해 보조배터리, 블루투스 스피커, 옷걸이형 건조기, 구강세정기, SD메모리카드, 무선충전기 등 20가지 제품을 CANZ(캔즈)라는 브랜드로 개발·출시했다. 뭐든지 만들 수 있다는 뜻이다. 10년간 오리온과 티베라를 다니며 상품 개발부터 유통까지 전 과정을 지켜본 덕에 상당부분 리스크를 줄일 수 있었다.”
직접 6개월간 발 각질 깎으며 개발
노 대표는 발 각질이 많은 편이다. 그는 “사우나가서 면도칼로 각질 제거도 받고 시중에 나온 다른 제품도 다 써봤지만 각질이 깨끗하게 없어지지 않고 위생적이지도 않은 것 같았다”고 했다. 그는 점심시간 직원들과 여러 이야기를 나누다 이런 고민을 꺼냈다. “저 말고도 발 각질을 신경쓰는 직원이 많더라고요. 최근 이미용 관련 한국 제품이 전 세계적으로 인기를 끌잖아요. 발 각질 제거기를 직접 만드는 사업도 좋을 것 같아 추진했습니다.”
-어떻게 개발했나.
“개발에 총 6개월 정도 걸렸다. 먼저 시중에 나온 각질 제거기들의 장단점을 분석했다. 소비자들이 무엇보다 위생에 대한 걱정을 많이 하더라. 위생을 위해 유리로 된 제품을 만들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시장 조사를 하던 중 유리로 된 네일 샤이너를 알게 됐다. 유리에 오돌토돌한 돌기가 있어 여기에 손톱을 갈면 반짝반짝하게 되는 것이다. 이를 응용해 발 각질도 제거할 수 있을 것으로 봤다. 그때부터는 최적화된 돌기 패턴을 찾는 데 주력했다. 제품 개발하는 동안 나뿐만 아니라 직원들 발뒤꿈치가 남아나질 않았다. 결국 갈고리 모양의 돌기가 각질 제거에 최적이라고 판단했고 이를 특허 출원했다.”
-생산은 어떻게 하나.
“특허 출원한 유리에 돌기 모양을 만들기 위해서는 일반 유리 가공으론 불가능했다. 마이크로 단위의 유리 패턴을 만들려면 반도체 패턴 기술을 접목해야 했기 때문이다. 상품을 만들기 위해 수십개의 국내 유리업체를 돌아다녔는데 ‘패턴이 미세해 가공이 어렵다’는 말도 여러 번 들었다. 결국 반도체 관련된 PCB(인쇄회로기판) 및 필름업체를 찾아내 유리에도 미세패턴을 올리는 작업에 성공했다. 현재도 베베풋글라스 발 각질 제거기를 만들려면 국내 유리 전문 가공 공장, 반도체 기술을 보유한 공장 등 여러 공정을 거쳐야 한다. 높은 기술력이 들어가는 제품이라 아직 중국 짝퉁 업체들이 이를 따라하지 못한다.”
-어떤 소비자 반응을 기대했나.
“내가 갖고 싶어서 만든 제품이라 자신은 있었다. 하지만 이렇게까지 대박날 줄 몰랐다. 베베풋 글라스(http://bit.ly/2vfrJpI)는 네이버 검색어 조회수 기준 3개월째 1위다. 본격 판매를 시작했을때 매달 1만개씩 팔린다. 재작년 11월에는 홍콩 미용전시회인 코스모프로프에 참가했는데 해외 바이어들에게 좋은 평가를 받았다. 독일의 유명 발관리 용품 업체인 ‘티타니아’ 기술개발 담당자도 우리 부스에 왔다갔다.”
-수출도 하나.
“미국, 스웨덴, 나이지리아에 수출할 예정이다. 초도 물량은 1만~2만개로 이야기 중이다.”
“올해는 작년의 2배가 목표”
베베풋 글라스가 예상을 뛰어넘는 판매를 보이고 있지만 엘엔티테크의 매출은 여전히 소규모다. 작년 매출액은 12억원 정도다. 올해는 작년 매출액의 2배가 목표치다. 올 3월부터 베베풋 글라스가 올리브영 매장에 들어가고, TV홈쇼핑 방송도 준비 중이다. 현재 엘엔티테크는 매출액의 10%를 상품 기획과 기술 개발에 투자한다. 노 대표는 “지금 당장 돈을 많이 벌겠다는 생각보단 상품 개발 재투자에 집중하고 있다”며 “실제로 예전 오리온이나 티베라 등 중소기업에서 일할 때보다 집에 월급을 더 적게 가져다 준다”고 했다.
-사업을 하면서 어려운 점은 뭔가.
“난 자본이 거의 없이 사업을 시작한 경우다. 국가에서 지원하는 창업 혜택이 많다곤 하지만 실질적으로 이를 받기엔 지원 절차가 매우 까다로웠다. 지원을 받으려면 상품 개발이나 기획 등은 제쳐놓고 그것만 쫓아다녀야 했다. 결국 우린 국가 지원을 포기했다. 좋은 상품을 개발해 매출을 올리는 게 더 빠르겠다고 생각했다. 중소기업이다보니 인력 관리도 어렵다. 지금은 경기도 고양으로 사무실을 이전했지만, 예전엔 파주시 광탄면에 사무실이 있을 때는 채용하기가 너무 어려웠다.”
-사업을 준비하는 사람들에게 한마디 한다면.
“돌이켜보면 난 미리부터 사업을 준비해 시작한 것이 아니다. 직장생활 10년을 착실히 하며 쌓은 경험이 사업의 바탕이 됐다. 지금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에 최선을 다하다보면, 결국 그 분야의 프로가 되고, 이것이 사업을 따로 계획해 준비하는 것보다 낫다고 본다.
-앞으로의 계획은.
“앞으로도 피부 관련 이미용 제품 개발을 확대할 것이다. 현재 발 각질 제거기 전동용을 개발 중이다. 이와 함께 중간 유통마진을 걷어내 실생활에 유용한 제품들을 소비자들이 합리적 가격에 구입할 수 있는 제품을 많이 내놓으려고 한다.”
글 김성민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