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F로 취업 1년 만에 실직
이후 20년 동안 영업 사원으로 근무
영업 경험 살려 창업 도전
제품 하나로 누적 판매액 50억 원 돌파
발걸음이 무겁다는 말이 있다. 못다 한 업무가 눈에 밟히거나, 지인과 헤어지기 아쉬워서 그런 게 아니다. 저녁만 되면 어김없이 부어오르는 발 때문이다. 하루 종일 앉아 있는 이들이나 서서 일해야 하는 직종 모두 이 부종을 피해 가기는 힘들다. 지난 20년간 발로 뛰던 영업사원도 마찬가지였다. 보기 좋게 들어맞았던 구두는 집에만 오면 벗기 힘들 정도로 꽉 끼었다. 자신처럼 늘 지쳐 있는 현대인들에게 15분 만이라도 휴식 시간을 선사하고 싶었다는 팔코나인 정지원 대표를 만났다.
◇ 15분으로 즐기는 발 마사지
하루를 마사지로 마무리하는 이들이 많다. 다음 날 조금이라도 개운한 몸 상태를 맞이하기 위해서다. 하지만 안 그래도 피곤한 상태다. 힘을 줘 다리를 마사지하는 건 오히려 또 다른 일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휴식시간의 발 마사지기는 단 15분에 발볼과 발가락, 발바닥과 발꿈치까지 꼼꼼하게 관리해 준다. 발등 전체를 감싸는 에어포켓으로 마치 손으로 주무르는 것과 같은 느낌을 받을 수 있다.
“기존 발 마사지기는 그저 발바닥을 지압하는 형태였습니다. 제게는 뭔가 2% 부족했죠. 발 전체를 케어해 피로를 직접적으로 풀어주는 제품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휴식시간 발 마사지기는 44개의 지압 돌기에 3개의 롤러가 더해졌다. 발의 앞 부분과 중간 부분, 끝부분으로 나눠진 롤러는 지압 돌기와 함께 발의 주요 경혈을 부드럽게 자극한다(https://bit.ly/3LJWOnx).
– 원래는 제품을 국내에 들여오지 못할 뻔했다고
“첫 시제품은 한국인의 평균 발 사이즈와 맞지 않았습니다. 발 통이 너무 좁아 마사지 강도가 크게 느껴질 정도였으니까요. 일단 발통을 넓히고, 이에 맞춰 롤러와 에어포켓의 사이즈를 변경했습니다. 금형을 새로 제작해야 했기에 창업 초반부터 예상치 못한 비용 문제에 당면하게 됐죠. 하지만 사람마다 편차를 느끼지 않는 기준점을 찾으려면 당연히 지불해야 하는 수업료였습니다.”
기준점을 맞추려는 노력은 현재까지 계속되는 중이다. 발 마사지기가 출시된 지 3년이 지났지만, 해가 지날 때마다 리뉴얼이 진행되고 있다. 올해 선보인 버전은 전체 사이즈는 작아지고, 발이 들어가는 공간은 1cm 더 커졌다. 공간 활용을 중시하는 이들을 위한 선택이다.
지친 발에 전해지는 편안함에 각종 온라인몰에서 벌써 5만 개의 판매고를 기록했다. 명절만 되면 기업에서도 직원 선물용으로 구매 문의가 이어지고 있다. 소비자들의 마사지 사랑을 눈치챈 정지원 대표는 현재 복부와 종아리 마사지기로 품목을 확장한 상태다.
◇ 지난 20년간 영업 사원으로 활약
정지원 대표가 좋은 제품을 발굴할 수 있었던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그는 지난 20년의 세월을 모두 무역 상사에서 보냈다. 사회생활의 시작은 1996년부터다. 졸업 후 곧바로 취업 길에 오른 터라, 영업에 필요한 비즈니스 매너부터 차근차근 배워나갔다. “드라마 <미생>을 떠올리면 될 것 같습니다. 해외 공장과 바이어를 컨택하고, 수출입 장부를 정리하는 등의 역할을 했었죠. 좋은 사수를 만난 덕에 빠르게 업무를 익힐 수가 있었습니다.”
특히 첫 출장이 그를 진정한 영업 사원의 길로 이끌었다. 무려 20박 21일에 달하는 기간 동안 코스타리카와 칠레, 베네수엘라 등을 오가며 해외 영업의 기초를 다졌다. 하지만 업무에 적응하기도 잠시, 입사 1년 만에 IMF가 찾아왔다. 회사도 문을 닫게 되면서 한순간 영업 사원 기대주에서 길거리에 나앉는 신세로 전락하고 말았다.
– IMF를 어떻게 극복하려고 했나
“많이 당황스러웠습니다. 1년은 누군가에게 짧은 시간일 수 있지만, 저는 그 기간에 제 나름의 영업 실력을 쌓을 수 있었으니까요. 그런데 이런 모습이 다른 이들에게도 전해졌던 것 같습니다. 새로 종합 무역상사를 창업한 사수에게서 같이 일해보자는 제안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긴 공백 없이 바로 제 능력을 펼치게 되었습니다.”
이후 20년 동안 무역업에만 종사했다. 국내 제품을 수출하거나 해외 아이디어 상품을 수입하며 자연스레 유통 사업의 잔뼈가 굵어졌다. 트렌드에 대한 감을 잃지 않기 위해 업무 시간을 쪼개 해외 박람회도 주기적으로 다녔다.
– 제품을 고르는 비결이 있다면
“사실 괜찮다 싶은 제품은 가격이 높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무조건 공장과 타협하려고 한다면 저렴해진 가격만큼 제품의 질도 떨어지게 됩니다. 공장 입장에서는 단가가 낮은 재료들을 써야 저희와 타협한 금액을 맞출 수 있으니까요.
이러한 절차는 결국 제품 사고로 이어집니다. 소비자의 신뢰를 무너뜨리는 거죠. 그러니 돌아오는 마진이 적은 편이라도 소비자가 만족한다면 그 제품을 고르는 것이 맞습니다. 제조업체와 서로 무리가 가지 않는 선에서 타협점을 찾는 건 그다음 단계인 것 같습니다.”
◇ 마사지 용품으로 누적 매출 50억 원
쉴 틈 없이 달려왔던 탓일까. 어느 날 회사에 출근한 정지원 대표는 자신의 모습에 회의감이 몰려왔다. 언제 연락이 올지 모르니 늘 핸드폰을 붙잡고 있어야만 했다. 유통하는 제품 중 90% 이상이 해외 제품이었기에 새벽에도 전화를 받는 건 일상이었다.
– 어떤 점이 가장 힘들었나
“20세 중반부터 50세가 될 때까지 한 길을 걸어왔습니다. 물론 제가 원해서 선택한 것이지만, 당장 한 시간 후의 제 삶을 통제할 수 없다는 사실은 절망적이었습니다. 20대 때 이루고자 다짐했던 목표들은 이미 잊은 지 오래였죠. 그렇지만 일은 여전히 재밌었습니다. 다만, 방대한 일에 속박되어 있다는 느낌이 강하게 다가온 것 같습니다.”
조금 더 의미 있는 하루를 보내고 싶었다. 선택의 폭이 넓어진다면 잊고 살았던 삶을 보다 알차게 지낼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2017년 자본금 1,000만 원으로 ‘팔코나인’을 창업했다. 20년 동안 해왔던 일을 이젠 혼자 하게 된 것이다. 다행히 그간 축적한 경험으로 유통업계 흐름을 파악하는 데는 큰 무리가 없었다.
“창업하던 해는 유통업계가 임계점에 도달한 시기였습니다. 해외 직구가 간편해지고, 각종 판매 사이트들이 생겨나면서 여러 업체가 시장에 범람했죠.” 이는 비즈니스를 하는 사람들에게는 최악의 환경이었다. 인터넷만 연결되어 있다면 누구나 해외 공장과 계약을 맺어 값싼 제품들을 들여올 수 있었다. 시장 내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서는 새로운 돌파구가 필요한 순간이었다.
– 그래서 어떤 제품을 눈여겨봤나
“제가 주목한 건 마사지 용품이었습니다. 마사지 용품은 전기를 이용하는 제품이 대다수이기 때문에 일반 아이디어 상품보다 인증 절차가 까다로운 품목입니다. 그만큼 시간과 비용도 많이 들어 진입 장벽도 높은 편이죠. 게다가 마사지는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좋아합니다. 수요도 어느 정도 보장되기에 시장성을 갖춘 품목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는 마사지 용품 전문 브랜드 ‘휴식 시간’을 론칭해 발 마사지기를 첫 제품으로 내놓았다. 출시 전 6개월 은 직접 공장을 찾아가 금형 제작에도 참여했다. 한국인의 평균 발 사이즈에 맞게 제품의 크기를 키우고, 마사지 강도에도 단계를 줬다.
아주 작은 변화였지만 소비자의 취향은 완벽하게 사로잡았다. 첫 구매는 곧바로 재구매로 이어지면서 휴식시간의 성장을 이끌었다. 지난 3년간 계속된 사후 보강 역시 소비자의 신뢰를 얻기엔 충분했다. 그렇게 팔코나인의 스테디셀러로 자리 잡은 발 마사지기는 누적 판매 금액만 50억 원에 달할 정도로 여전한 인기를 자랑하는 중이다.
– 창업을 꿈꾸는 이들에게 한 가지 조언이 있다면
“사실 사업은 8할이 운, 나머지 2할이 실력입니다. 발 마사지기 역시 출시됐던 2017년 이후 전신 마사지기가 유행하면서 덩달아 주목받을 수 있었죠. 하지만 창업하는 이들의 대부분이 나머지 2할을 간과합니다. 자신의 실력이 부족하거나, 철저한 준비 기간을 거치치 않는다면 절대 그 운의 달콤함을 맛볼 수 없습니다. 혼나보고 실패도 경험하면서 차근차근 운을 맞이할 준비를 해나갔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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