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유학하며 개발 열정 키워
교통 체증 시달리다 운동 기구 개발 결심
지금까지 개발한 제품만 200여 개
‘누군가에게 도움 되기를 바랄 뿐
사회적 거리 두기가 장기화되면서, 슬기로운 ‘집콕’ 생활을 보내려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쉬는 공간이라는 인식이 강했던 집은 휴식과 여가 생활, 그리고 일까지 즐기는 공간으로 변신한 지 오래다. 무엇보다 바이러스 감염을 막기 위한 홈 트레이닝 열풍이 한창이다. 실제 성인남녀 1,6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78.1%가 코로나19 이후 집에서 운동을 해봤다고 답했다.
이젠 집에서도 간단히 몸을 가꾸는 시대가 오자 각종 홈트레이닝 기구들이 대세로 떠오르는 중이다. 그 속에서 ‘케겔 운동’으로 남성과 여성의 건강을 모두 책임진 이가 있다. 2005년부터 제품 개발에 착수해, 지난 2018년 한층 업그레이드된 케겔 운동 기구를 선보였다(https://bit.ly/3L8MBRI). 케겔 운동 기구 ‘엔조이’를 세상에 내놓은 공주대학교 이동석 교수를 만나 개발을 향한 그의 애정을 한 번 들여다봤다.
◇ 국내 최초로 케겔 운동 기구 개발
실내 운동 기구에 대한 시장의 니즈는 이미 넘쳐나고 있다. 그러나 그 관심에 비해 품목은 그리 다양하지 않은 편이다. 이동석 교수는 바로 이 점에 주목했다. 하나의 제품으로 다양한 부위를 단련할 수 있도록 만들어, 많은 이들이 홈트레이닝을 즐기도록 도왔다. 그렇게 탄생한 제품이 케겔 운동 기구 ‘엔조이’다.
사용 방법은 굉장히 쉽다. 의자에 제품을 두고 앉은 후, 다리를 오므리고 벌리는 동작을 반복하면 된다. “이 동작으로 허벅지 안쪽에 힘을 줘 다리 전체의 내전근을 자극하게 됩니다. 하체를 튼튼하게 보강하는 것은 물론, 골반 건강과 케겔 운동에도 효과적이죠.”
하체 운동만 가능한 건 아니다. 제품을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상체와 복부 운동을 즐길 수 있다. 강도 조절기로 중량을 늘리는 것 같은 기능도 낼 수 있다. 조작법은 매우 단순해 보일지라도, 5분간 제대로 운동에 임하면 어느덧 이마에서 땀이 줄줄 흐른다. 실제로 후기에는 ‘긴가민가했는데 정말 운동이 된다’는 칭찬이 자자하다.
사실 2007년 1차 제품의 인기는 시들했다. 이동석 교수가 케겔 운동 기구를 시장에 처음 선보였다 보니, 소비자들 사이에서는 ‘어떻게 사용하는 것이냐’는 반응이 주를 이뤘다. 그러나 곧 케겔 운동의 중요성이 퍼지게 되면서 판매량이 서서히 증가했다. 지난 10년간 판매량만 약 37만 개다. 2018년 업그레이드 버전으로 출시된 엔조이 역시 벌써 각종 온라인몰에서 수차례 완판을 기록했다.
◇ 이태리 유학 도중 싹 틔운 개발 열정
이동석 교수는 그간 제품 개발보다는 디자인 분야에서 명성을 쌓아왔다. 산업디자인을 전공한 그는 디자인에 대한 더 넓은 시각을 기르고자 이탈리아로 유학을 떠났다. 유학 당시 지도 교수 중 한 명이 산업디자인계의 거장 ‘스테파노 지오반노니’이기도 했다. 은사들이 디자인한 생활용품을 접하게 되면서 자연스레 해당 분야에도 관심을 갖게 된다.
그 흥미를 바탕으로 현대전자에서 제품 디자인을 맡았다. 이때까지만 해도 개발에 대한 열정은 미미했지만, LG전자로 이직 전 떠난 일본 여행에서 새로운 세계에 눈을 뜨고야 만다. “여행 도중 디자인 전문 매장 ‘아식스’ 건물에 방문했습니다. 전 세계 디자인 브랜드가 그곳에 모여 있었죠. 전시부터 판매까지 이뤄지는 모습을 보고 직접 이런 브랜드를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때부터 디자인 제품 개발에 애정을 쏟게 되었습니다.”
첫 제품 아이디어는 운전 도중 떠올랐다. 이동석 교수는 1996년부터 공주대학교 교단에 섰다. 매번 차를 이용해 출퇴근했는데, 고속도로를 지나야 하다 보니 교통 체증에 시달리는 빈도가 잦았다. 하루의 시작과 끝을 도로에서 보내는 셈이다. 그 시간이 아까워 운전 도중 앉아서라도 할 수 있는 운동이 없을까 고민하게 됐다. 이 작은 불편함에서 탄생한 제품이 케겔 운동 기구다.
– 왜 케겔 운동에 주목한 건가
“언제 어디서나 누구나 쉽게 이용하는 운동 기구가 아이디어의 핵심이었습니다. 여기에 기존 시장에는 나와 있지 않은 제품을 선보이고 싶었죠. 그래서 운동과 관련된 여러 자료를 찾아보았는데, 그중 케겔 운동이 눈에 띄었습니다. 케겔 운동은 자궁, 방광, 요도, 직장과 같은 인체의 주요 장기를 떠받치는 골반기저근을 강화시켜 줍니다. 성별 구분 없이 필요한 운동 중 하나이지만, 이를 돕는 운동 기구는 시중에 없었죠. ‘생소한 운동’이라는 점 때문에 개발 의지가 샘솟았던 것 같습니다.”
제품을 준비하는 데만 2년에 가까운 시간이 걸렸다. 이 중 아이디어를 구체화하는 과정이 1년, 디자인에만 소요한 시간이 6개월이다. 숱한 노력 끝에 제품 목업 제작 단계까지 나아갔지만, 이번엔 제품 테스트가 문제였다. 구조에 따라 재료의 내구성이 어떻게 바뀌는지 확인하고자 해도 마땅한 방법이 없었다. 결국 4차례에 걸쳐 목업을 제작하게 되면서 또 3개월의 시간을 지체하고 만다.
2005년부터 준비한 제품은 2007년이 되어서야 모습을 드러냈다. 이동석 교수가 처음으로 개발한 케겔 운동기구 ‘조이조이’는 무릎 사이에 제품을 대고 조이는 것으로 근력 강화에 도움을 줬다. “그러나 시장 반응은 냉담했습니다. 케겔 운동 자체가 잘 알려지지 않았을뿐더러, 모양도 기존 운동 기구들과 달라 소비자들도 반신반의한 것 같습니다. 출시 1년을 지나서야 조이조이 판매량도 점차 늘어갔네요.”
◇ 누군가에게 ‘도움을 주는’ 제품을 만드는 것이 목표
지난 2017년부터는 케겔 운동 기구 2차 제품 ‘엔조이’도 선보였다. 첫 제품 조이조이가 운동 기구라는 본래의 목적에 맞는 모양이라면, 새로 개발한 엔조이는 오브제 느낌이 나도록 디자인되었다. 무게도 덜어냈다. 가볍고 튼튼한 PC ABS 소재로 변경해 제품을 들고 상체 운동까지 해결하는 다목적 운동 기구로 재탄생시켰다. 2018년 출시된 엔조이는 벌써 몇 차례나 완판을 기록한 뒤, 여전히 인기리에 판매 중이다.
제품 개발에 대한 이동석 교수의 열정은 운동 기구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그는 2005년부터 꾸준히 각종 생활용품을 제작해왔다. 아이홀리 슈어행거 옷걸이도 그중 하나다. “대형마트에 생활용품을 납품하는 회사에서 옷걸이 제품 개발을 의뢰한 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의뢰한 회사가 사업을 포기하는 바람에, 개인적으로 제품 개발을 해나가게 됐죠. 그러다 상품화까지 한 제품이 바로 아이홀리 슈어행거 옷걸이입니다.”
슈어행거는 ‘숨 쉬는 옷걸이’라는 별명을 갖고 있다. 옷걸이의 목과 어깨에 뚫린 구멍이 통기성을 향상시키기 때문이다. 겹쳐서 보관하는 종이컵에 착안해, 물류와 보관이 편리하도록 옷걸이를 적층 구조로 만들었다. 간단하지만 뛰어난 두 가지 기능으로 특히 습한 기후의 국가에서 판매 문의가 빗발쳤다. 2010년에는 슈어행거 옷걸이로 홍콩 기프트 용품 박람회에도 참여했다. 그런데 이곳에서 뜻하지 않은 대박을 맛봤다. 독일에 본사를 둔 슈퍼마켓 유통회사 LIDL(리들)의 최고경영자가 제품을 보고 극찬을 아끼지 않을 것이다. 뒤이어 이동석 교수는 그 자리에서 엄청난 물량 계약까지 제안받았다.
”박람회에는 중소기업 수출 지원 차원에서 정부 관계자와 영부인도 참석했었습니다. 슈어행거 옷걸이가 칭찬받는 장면을 보고 같이 축하해 주시기도 했죠. 이런 경험이 없었던 터라 놀라기도 하고 얼떨떨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안타깝게도 LIDL이 제안한 물량은 그가 감당하기엔 너무 벅찬 수준이었다. 설상가상으로 오더 조건까지 까다로워지면서 웬만한 제조사가 제품을 생산하기 어려운 지경까지 이르렀다. 약속했던 시일은 훨씬 지나고 말았지만, 다행히 양산화에 성공했다. 슈어행거 옷걸이는 LIDL을 비롯해 미국, 유럽, 일본 등에서도 눈길을 끌어, 현재까지 약 1,800만 개나 수출됐다.
이외에도 그가 개발한 제품은 무수히 많다. 대형 제조 장비부터 새마을호 기차 의자 등 200여 건 이상의 공공 및 민간 기업 제품이 이동석 교수의 손에서 탄생했다. 자세 교정 방석과 아기 치발기, 층간 소음 방지 슬리퍼 등처럼 개인적으로도 꾸준히 제품 개발을 이어나가고 있다.
– 이렇게 꾸준히 새로운 제품을 출시할 수 있는 원동력은 무엇인가
“원래 게으른 사람이 발명을 한다고 하는데, 저는 그 반대인 것 같습니다. 몸이 부지런해서 무언가를 만드는 것을 좋아하죠. 제가 개발한 무언가는 꼭 새롭지는 않습니다. 그렇지만 제품으로써 서비스가 되는 것, 즉 특정한 기능은 갖추고 있습니다. 이렇게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 때까지 성실하게 제품을 만드는 성격이 색다른 제품을 내놓게 되는 원동력이 되는 듯합니다. 앞으로 개인적으로 개발을 이어나가면서도, 중소기업 제품 개발에도 조언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이 저의 바람이자 작은 목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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