캥거루는 대형종의 경우 놀라운 점프력으로 최대 거리 15m, 높이 13m를 뛰어넘을 수 있고 이동 속력이 시속 60km가 넘는다고 한다. 이처럼 한 번에 빠른 속력으로 먼 거리를 이동할 수 있는 캥거루는 호주에서만 볼 수 있지만, 우리나라에서도 ‘캥거루’를 만날 수 있는 뜻밖의 장소가 있다.
우리나라에서 캥거루가 자주 출몰하는 곳은 바로 고속도로다. 고속도로에서 단속카메라가 있는 구간에서 속도를 줄였다가 카메라를 지나치면 다시 가속하는 운전 행태를 캥거루 운전이라고 한다. 이런 운전 행태가 우리나라 고속도로에서 유독 자주, 보편적으로 나타나는데 그 이유는 무엇일까?
첫 번째 이유는 고속도로 흐름에 비해 낮은 제한 속도에 있다. 한국의 고속도로 제한 속도는 1970년대에 경부고속도로가 지어지면서 당시의 차량과 타이어 성능을 기준으로 법에 의해 규정되었다. 제한 속도가 규정된 시점에서 시간이 많이 흘렀고 그동안 차량과 타이어 성능은 물론 고속도로의 설계 방식에도 많은 발전이 있었지만, 속도 규제에 대한 변화는 따라주지 않았다.
한국의 제한 속도는 다른 유럽 국가에 비해서도 낮은 편이다. 신설되는 고속도로는 평지 기준 설계 속도가 140km/h까지도 가능한데 현재 우리나라에 최고 제한 속도는 110km/h에 불과하며 제한 속도가 도로 상황에 따라 상향된 사례도 극히 드물다.
두 번째 이유는 내비게이션의 발전으로, 내비게이션이 고속도로 위 아무리 많은 단속카메라도 어디에 있는지 전부 알려준다. 과속단속 구간에 대한 안내가 고속도로 주행 내내 끊이지 않을 정도로 안내가 정확하고 활발하니 운전자들이 카메라가 없는 구간에서까지 속력을 줄여야 하는 필요를 느끼지 못하는 것이다. 오히려 내비게이션이 캥거루 운전을 부추긴다는 의견도 있다.
마지막으로, 캥거루 운전이 너무 많다는 점에 있다. 오히려 고속도로에서 정속 주행, 저속 주행을 하는 운전자가 ‘민폐’로 취급될 정도로 캥거루 운전은 우리나라 고속도로에서 보편화되어 있다. 일부 자동차 커뮤니티에서는 고속도로에서 제한 속도를 지키는 이들을 비방하는 용어를 사용하면서 카메라가 없는 구간에서는 과속을 하는 게 맞다는 여론이 일각에 형성되어 있다.
규정을 집행하는 입장에서는 이런 현상을 개선할 수 있는 방안에 대해 골머리를 앓고 있다. 당장 전국의 도로 규정을 바꿀 수는 없는 노릇이니 단속을 확대하고 강력히 하는 것이다.
캥거루 운전을 단속하기 위해 구간단속이 도입되었다. 구간단속은 단순히 도로의 특정 구간을 정해서 그 구간을 통과할 수 있는 시간을 계산해 평균 속도를 도출해 기준을 초과하면 처벌하는 방식이다. 구간의 시작과 끝 지점의 규정 속도, 평균 속도까지 지켜야 해서 한층 기존보다 강화된 단속 방식이라고 할 수 있다.
암행 순찰도 이루어진다. 일부 다른 국가들의 경우에는 과속 단속을 예고하는 표지판이 없고, 교통경찰의 암행 단속이 가능하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과속 단속에 있어 경찰의 사전 고지의 의무를 규정한 법 조항이 존재해 암행 순찰에 대한 논란이 있었다.
경찰차는 아니지만, 경찰 마크는 달고 있는 이상한 암행 순찰차를 운행하면서 반쪽짜리 암행 순찰이라는 비난도 있었다. 암행 순찰차는 차량 내부에 ‘차량 탑재형 교통단속 장비’를 설치하고 고성능 카메라를 활용해 전방 차량의 속도를 측정, 실시간 단속정보를 저장하는 기능을 갖췄다.
경찰은 매년 단속구간을 확대하고 단속카메라를 늘리겠다는 발표를 하고 있다. 고속도로에서 미끼용 가짜 단속카메라도 많다.
이러한 과도한 단속에 대한 운전자들의 불만도 있다. 과속을 하면 벌금을 내야 하고, 그렇다고 철저히 과속을 하지 않자니 도로 위의 ‘악당’취급을 받기 때문에 운전자가 하기 싫더라도 캥거루 운전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낮은 제한 속도에 대해 불만이 있는 운전자들은 과속을 하는 것과 교통사고율에 대한 인과 관계가 없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오히려 단속을 피하려고 흐름을 방해하고, 급브레이크를 밟으면서 교통사고가 발생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 반대 의견으로 과속단속은 필수적이라는 의견도 있다. 과속은 사고가 발생했을 때, 사람과 차량에 치명적이고 실제적으로 제한 속도 규정을 완화하기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정속 주행이 필수인 화물차나 대형 차량들에게까지 일괄적으로 제한 속도를 상향하는 것은 도로 위의 큰 혼란을 야기한다는 것이다.
이처럼, 빠른 시간 안에 캥거루 운전자가 사라질 전망은 보이지 않는다. 다만, 도로 위의 규칙을 지키는 것에 대해 쉽게 비난하지 않는 운전자 문화가 필요하고, 도로 위에서는 언제나 안전이 제일이라는 것만은 우리 모두가 지켜야 하는 규칙이다.
댓글0